공부하고싶다 :: 2004/11/27 12:20

어제저녁 cyppi씨와의 길었던 대화. 내가 공부하고 싶다고 느끼게 된 사연들. 그리 늦지않은 시기안에 제대로 공부해보리라 느끼다.

1. 김성호박사. 강연에서 내 뒤통수를 때리다.
며칠전 2004 한국생물정보학회에 등장하셨던, 한국인중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다고 알려진 김성호박사의 structual bioinformatics 강연. 단백질의 구조는 변화무쌍하고, 워낙에 다이나믹하여,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제대로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 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던 나에게, 번뜩이는, 내 뒤통수를 때리는 느낌하나가 왔는데... 바로, 지가 아무리 변화해봐야 일정패턴안에서만 변화할 것이라는것. "단백질"로서 이 오랜 진화의 세월에 존재하려면, 기능을 수행한다라는 엄청난 제약조건아래에서만 변화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벗어나면 곧 존재의미가 없어지므로...

이 이야기가 나에게 주는 교훈은 그거다. 사물과 같은 레벨에서 사물을 보면 그것의 변화는 너무도 어렵다는것. 하지만, 레벨을 하나 올려서 거시적입장에서 보면, 그 변화는 지가 변해봐야 어느패턴안에서만 변한다는것. 그러고보니, 과학의 많은 연구방법들이 이런 방법을 취하고 있다. 열역학이 그렇고, 통계학이 그렇다. 개별 분자/노드들 하나 윗 레벨에서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것. 이것은 복잡미묘한 생명현상을 충분한 거시적관점을 통해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2. 실생활에의 도움/돈.
미시적 관점에서의 연구는 실용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단백질도킹의 모델링을 통해 신약을 설계한다던가 등등의...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의 연구는 실용성과는 멀다. 아카데믹한 이야기들이고, 추상적이며, 진리탐구에 가깝다. 마치 하디가 자신의 연구성과는 전혀 실생활에 쓰이지 않을것이라고 선언했던것처럼. 그렇다... 내가하고싶은 연구는 거시적인것이고, '돈'하고는 거리가 멀것이다. 그렇다고 안하고만 있다가, 영화 콜레트럴의 이야기처럼 나중에 늙어서 골방 TV앞에서 옛날에 내가 그걸 꿈꾸곤 했었지 하고 중얼거리기만 할것인가?

3.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파레토법칙
보통 분자생물학 신호전달관련 연구를 보면, 단백질 10~20개 정도의 상호네트워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고는 그 네트워크의 동적변화를 추적하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각 단백질/유전자의 발현에 관심이 집중된다.

나는 저러한 특성의 네트워크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여러개의 네트워크들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E-Cell을 그려본다. 하나의 네트워크안에서의 단백질/기질농도 변화는 MM 식에 의해 표현되고, 그것이 마치 화공프로세스 제어에 쓰이는 미분방정식들로 표현되는 네트워크.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물려있는 세포안의 모습들. 세포안에 얼마나 많은 케미칼들이 있을까. 하지만... 좀 더 거시적입장을 취하면, 파레토법칙처럼, 중요한 역할의 케미칼들은 한정되어 있다. 다 끌어들일 필요는 없는것이다. 그네들만을 내 모델안으로 끌어들인다. 마치 객체지향모델링에서 중요한것만 드러내고, 그렇지 않은것은 드러낼 필요가 없는것처럼. 이 얘기는 김성호박사의 거시적안목과도 일맥상통한다.

4. 스케일의 문제
cyppi씨와 나와의 관심분야 차이는 스케일이다. 그는 조금 더 low level 쪽에 관심이 많다. repeat masking하는 스크립트를 보고, 각 중간 모듈하나하나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나는 조금 다르다. 그 하위 모듈들을 다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인류가 연구한것이고, SCI저널등을 통해 입증된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므로,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윗 레벨에서, repeat masking의 단위 프로세스가 전체 공정상에 어떻게 연결되어지고 시스템이 조립되어, 내적 특성이 창발하느냐가 관심사이다.

어떤것이 장점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단지 스케일의 문제이다. 미시적시각은 작은분야에만 몰입하게 만들며, 전체적시각은 모호하고 애매한 면이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스켑틱스관련한 누군가는 창발성이야 말로, 대표적인 애매모호한개념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4. 대가찾기
무협지를 보면, 무림고수를 꿈꾸는 젊은이가 당대 최고수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는 필살기를 익힌다. 홍성욱교수는 관련분야의 대가밑에서 그만을 따라갔더니, 어느덧 자신이 최고의 위치에 있더라 라고 얘기한 바 있다. 좋은 스승.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의 대가를 찾고, 그에게 지도받는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지름길과도 같다. 뉴튼이 얘기했던 거인의 어깨는 혼자의 힘으로 올라가기엔 우리네 삶의 시간이 너무도 짧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대가가 있는가? 아니, 우리는 대가를 찾으려 하는가?

5. 나는 공부할만한가?
나는 충분히 똑똑한가. 과연 공부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절대적기준으로 보면 그렇지않다. 전혀 안똑똑하고, 가끔은 안돌아가는 머리를 쥐어뜯을때도... 그렇다면, 얼마나 똑똑해야만 공부를 할 수 있는것일까. 이세상의 대가들은 그렇게도 똑똑한걸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관심도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을까 위안해본다. 공자가 얘기하지 않았던가. 호지자불여락지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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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anze | 2004/12/01 11: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와..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네요. 멋진 대화를 나누셨을거 같아요. 담엔 저도 껴서 들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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