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와 살사 :: 2007/12/25 00:52L모 살사동호회. 정모날이 되면 이곳 저곳에서 춤꾼들이 몰려든다. 경쾌하고도, 우아한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커플들은 자기들이 더 예쁘다고 서로 뽐낸다. 노래가 바뀔때마다 새로운 커플이 만들어지며 진짜 사랑을 하듯 몸으로 속삭이는 한편의 뮤직비디오가 매번 연출된다. 그들의 얼굴표정엔 모두 행복감이 보인다.
춤꾼들. 정말 춤이 좋아 모인 사람들. 나이트나 캬바레에서 볼 수 있는 춤이 아니다. 화려하기가 매번 공연같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늘 넋이 나가게 하는 라틴댄스. 그들의 직업은 무엇일까. (출처가 불분명한) 모 통계에 의하면 남자는 프로그래머가 제일 많고, 여자는 초등학교 교사가 제일 많다고 한다. 아니! 프로그래머라고? 설마... 내가 알기론 그들은 내성적이고, 잘 어울리지 못해서 안 그럴텐데... 하지만, 안그렇다. 실제로 프로그래머들이 진짜 자신들의 끼를 숨기고 프로그래밍에만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래밍만한 재밌는 꺼리가 세상엔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러다 그들이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한다면? 프로그래머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통찰이 있다. 자신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구현하는 소질을 지닌 그들은 무엇을 하더라도, 깊고 체계적으로 익히고, 원리를 간파하며, 그 깊은 즐거움을 느낄 줄 안다. 코딩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게 어디 흔한 일인가? 매트릭스의 어색함을 눈치챈 모피어스, 트리니티, 네오도 프로그래머였다. 그들은, 곧 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역량을 갖출 것이다. (오바다.. ㅡ.ㅡ;) 프로그래머가 한단계 더 성숙하려면,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페어프로그래밍 중 파트너의 얼핏 스쳐지나가는 오타 타이핑에서 그의 의도를 간파하고, 관련 레퍼런스를 찾아본다 던가 등의 짜릿한 호흡은 XP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아니다. 다른사람과의 호흡을 맞추는 즐거움... 그 동일 선상에 살사가 있다. 이제 갓 초중급 딱지를 뗀 K군. 어느날 홍대의 B모 바에서 예쁘게 춤을 추는 어느 살세라(살사를 추는 여자댄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음... 저 살세라랑 추고 싶다. 내가 잘 리드할 수 있을까? 틀리게 리드해서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살사는 남자가 리드를 하고 여자가 팔로우를 하는 커플댄스이다. 리드의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춤 신청을 했다. 환하게 승낙하는 살세라. 와우! 그녀와 춤을 추는데,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 아니, 뭔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나의 리드와 텐션이 그녀의 동작과 적절히 조화하고 있다. 음악의 선율과 함께 맞아 떨어지는 듯한 힘의 균형이 그녀의 뇌쇄적인 미소와 함께 나를 녹인다. (어째 이야기가... ㅡ.ㅡ;) 그렇다. 살사의 즐거움을 알아차린 많은 이들은 그 교감의 맛을 느낀 사람이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미세한 몸동작으로 서로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은 프로그래머라면 더욱 잘 느낄만한 즐거움이다. 초초급을 막 수료한 A군. 자신이 배웠던 패턴의 순서를 바꿔서 해보니까, 전혀 다른 느낌이 나는 것을 확인했다. (살사는 약 백여가지의 일정한 단위 동작 - 이를 보통 패턴이라고 한다 - 을 조합하여 이루어진다.) 자신 뿐이 아니라, 파트너도 새로와하는 느낌이다. 아하, 이것들은 서로 다르게 조합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나는구나! 그는 나중에 패턴연구 전문가가 되어, 후배들에게 매번 새로운 패턴을 알려주게 된다. 기본 단위 하니까, 혹시 단위테스트가 생각나는가? 당신은 꼭 살사를 해야만 하겠다. Y군은 며칠 뒤 있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일반 소셜댄스(즉석에서 추는 춤)에서는 즉흥적인 패턴조합을 하면 되지만, 공연은 다르다. 한편의 영화각본을 쓰듯, 선곡한 음악에 들어갈 동작 및 패턴들을 하나하나 직접 짜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음악의 이 부분에 딱 어울리는 몸동작을 생각해내느냐... 작곡과도 비슷하다. 상상력과 미적감각을 총 동원하여, 3분여의 공연을 디자인 해야한다. 힘들긴 하지만, 며칠 뒤 자신과 파트너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주목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점점 더 설레여진다. 프로그래밍에 미적감각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래머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들만의 코드에 대한 미적 취향이 있다. 그 취향은 다른 사람의 취향과 조화하여, 실리콘위의 작품이 된다. 난 지금 이 개발 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개발실 한편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다음 짝프로그래밍하다가 잘 안풀리는 문제를 만났을 때, 한곡씩 추는 건 어떨까? (남자끼리 짝프로그래밍중이였다고? Y군처럼 살세라도 할 줄 아는 남자도 가끔 있다. ㅡ.ㅡ;) XP에서 원반던지기를 파트너끼리 함으로써, 호흡을 맞춘다고 하던데, 살사만한것은 없을 듯 하다. 프로그래머들이여, 살사를 배우자. 몸도 건강해지고 좋은점도 많다. 요즘 바에 나가보면, 남자들이 많이 부족한데, 그 이유로 여자들이 안오려 한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어여 나와 이 즐거움을 함께하자. ^^; Trackback Address :: http://yong27.biohackers.net/trackback/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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