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체 전좌를 통한 진화 :: 2009/05/17 13:02

늑대별님 블로그에서 어떤 임산부의 고민을 봤다. 유전체학을 연구하고 활용분야를 고민하긴 하지만 실제 임상 예제는 접한 적이 없고, 또 유전학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예들이 신기하고 흥미롭다.

양수검사로 태아의 염색체 이상을 봤더니, 염색체 전좌(Chromosomal translocation)가 발견됐다고. 11번 염색체와 18번 염색체가 바뀌어 붙은 이 현상은 만일 부모에게 없던 것이라면 태아의 기형확률이 6%가 된다고 한다. 안타까운 부모의 심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이렇게 출산 전에 태아의 건강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무섭기도 하다.

"부모에게 없던 것"이라는 문구에서 잠시 주목. 저 말은 이러한 염색체 변이는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며, 또 살아가는데 별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부모에게 만일 저 변이가 이미 존재했다면 태아도 건강할 텐데 그게 아니기 때문에 기형확률이 있다는 얘기.

위키피디아를 보니까 625명 태아중 1명에게 염색체전좌가 발견된다고 한다. 이는 정말로 높은 빈도인데, 이대로라면 현재 인류는 염색체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생존에 이상이 없는 변이만이 남아있겠지만.) 인간게놈프로젝트로 만들어 놓은 레퍼런스서열도 이렇게 잦은 염색체 변화라면 관리하기 어렵겠구나 싶기도 하다. USCS genome browser를 보면 Structural variation을 보는 항목이 있는데, 각종 저널을 통해 밝혀진 구조적인 변이들이 기록되어 있다. SNP이야 염기자리 하나만 보면 되지만, 이렇게 서열 요소들이 섞이는 현상은 그 영향을 파악하기도, 그래픽으로 보여주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SNP연구야 이제 막바지고, 제대로 된 개인유전체 연구를 위해서는 CNV(Copy Number Variation)를 봐야 한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다.

염색체 뒤죽박죽 하니까 예전에 썼던 성염색체 보존 포스트에서의 그림이 생각난다.



인간과 쥐의 유전자 구성은 거의 유사하다. 다만, 공통조상으로 부터 갈라진 그 이후부터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염색체의 섞인 정도가 두 종의 시간적 차이를 얘기해준다. 이 얘기는 종분화(Speciation)의 근본 기작이 염색체 전좌가 아닐까를 상상하게 한다. 종내 두 집단이 격리되고 오랜시간이 흐르고 나면, 각 집단은 각각의 섞임을 유지할 것이고, 어느 순간 두 집단의 차이가 다음 세대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달라지게 되면, 그것이 바로 종분화가 아닐까? 진화생물학에도 종분화라는 분야가 있던데, 분명 이 언급이 있을 것 같다.

변화의 원동력 변이, 그리고 외래종과 기생충에서 보듯이 충분한 유전적변이를 확보하는 일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작이다. 변이를 통해 다양해지고, 이 다양함은 건강함을 대변한다. 인간 유전체의 30억 염기쌍 가운데 다음세대로 전달되는 100개 정도의 점 돌연변이, 그리고 꽤 높은 빈도의 염색체 전좌같은 구조적 변이들. 거기에 인간사회에도 어렴풋이 작용하는 사회선택(사회생활도 잘 해야한다는 넓은 의미의 자연선택)은 인간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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